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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저런 책 읽기 2007/10/23 17:49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 R. 벅민스터 풀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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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 벅민스터 풀러, 2007, 우주선 지구호 사용설명서, 마리 오 역, 앨피.

    Richard Buckminster Fuller, 1963, Operating Manual for Spaceship Earth, Southern Illinois University Press.


    리처드 벅민스터 풀러,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우주선 지구호"라는 말은 자주 들었을 것이다. 환경 담론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저 구호와 마주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주선 지구호"라는 말은 인류 전체가 하나의 우주선에 동승한 공동 운명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이 바로 1963년도에 처음으로 출판되었던 이 책이다.[#1] 그 이후로 수많은 환경운동론자가 "우주선 지구호"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고,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가이아(Gaia)"이론과 결합하여 대중들에게 환경 보호의 감정적 각성과 동원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R. 벅민스터 풀러 (1895 ~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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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사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 이분이 다재다능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디자이너, 건축가, 시인, 작가, 교수, 공학자, 발명가 등등. 그래서 이 책에서 역자는 이분을 "20세기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분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지오데식 돔(Geodesic dome)이다. 단어는 생소해도 그림을 보면 누구나 본 적이 있는 바로 그것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만들기 쉽고, 튼튼한 구조물이다. 게다가 내부에 기둥도 없고, 많이 쌓을수록 오히려 더 강력해지는 그런 구조물이다. 서울랜드에 가면 이와 비슷한 것이 있다. 풀러는 효율, 절약, 협력과 같은 가치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는 다이맥션 자동차나 저렴하고 튼튼하면서도 쉽게 지을 수 있는 주택을 만들기도 하였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모두 친환경적인 발명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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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만든 지오데식 돔은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1967년 몬트리올 무역박람회에서 그가 만든 구조물이 설치, 전시되었다. 이것으로 이듬해 풀러는 미국 건축 디자인상을 받게 된다. 게다가 1985년, 탄소 60개를 축구공처럼 만든 C60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데에 성공하고, 성공한 과학자는 풀러의 이름을 따서 이 물질의 이름을 풀러린(Fullerene)으로 지었다. 이것의 모양은 옆에 있는 그림처럼 생겼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나를 괴롭히던 교과목의 표지 모델을 장식하던 물질이 바로 이 녀석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는 아픈 추억이 있는 그림이다. 아무튼 이것을 합성한 과학자들은 1996년 노벨상을 받았다.


    사용설명서

    이 책은 풀러 자신의 생각을 차분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다. 앞부분에는 지난 수백 년간의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해적들의 시대"로 정리해버리고 있다. 놀랍도록 간단하지만 사실 대부분 인정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후, 지금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전문화"로 제시하고 있다. 지나치게 세세한 부분에만 전문성이 높아지는 경향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결국 전문화를 추구하는 것은 멸종을 부르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진화론적인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전문화의 경향은 전체적인 안목과 시각을 갖추는데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사고하는 법을 이끌어낼 수 없고, 그것은 결국 "우리의 [유일한] 자본인 지구"를 갉아먹는 일이 되어버리고, 우주선의 연료를 공급하려고 우주선 자체를 불태워버리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방법과 평가

    풀러는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는 시너지(synergy)이고, 다음으로는 지식자원으로서의 부(富)를 활용하는 것이다. 시너지라 함은 전체가 가진 잠재력이다. 따라서 시너지를 강조하는 것은 부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노력을 기울이라는 이야기이다. 다음으로 풀러는 "부"를 다른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인간의 창조성에 기반을 둔 무한한 지식자원이 진정한 "부"라는 것이며, 이것은 무한히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부보다는 인간의 지성을 활용하는 것이 진정으로 부를 증식시키는 일이며, 이것은 컴퓨터의 발전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풀러의 설명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컴퓨터가 발전한 시대를 보면, 풀러의 예측이 적중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컴퓨터가 발전해서 인간의 물리적인 노동이 줄어들면, 인간이 이제 창조적이고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자원으로서의 부가 무한정 증가할 수 있다는 풀러의 예측은 논리적 연결이 완벽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컴퓨터의 도움으로 줄어든 물리적 노동이 직접 지식자원으로 연결될 개연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창조된 지식자원이 어떤 지식자원인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대를 풀러가 고려한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였을 것이 분명하다.

    사실 이 책은 논리적으로 뛰어나거나 새로운 발견이 담겨 있는 책은 아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책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내용 때문이라기보다는 "우주선 지구호"라는 멋들어진 제목 때문이다. 인구에 회자하는 이 멋진 구호는 환경운동에서 자주 사용되었고, 이후 "구명정"에 대한 비유로 확장되어 환경과 관련한 주요 이론적 흐름으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구명정 윤리"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입장과 풀러의 입장은 다르다. 그래서 이 양자를 같은 그룹으로 묶으면 아마도 풀러 선생이 하늘나라에서 기분 상해할지도 모를 일이다.[#2] 따라서 "우주선 지구호"를 단순히 멋있는 구호로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여백의 미(?)

    이 책은 분량이 매우 작다. 영문은 이미 웹에서 전문을 찾아볼 수 있다. [보러가기 ] 직접 보면 알겠지만, 이것이 과연 한 권의 책으로 될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분량이 작다. 이런 글이 한글로 번역되어 대략 180페이지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참 놀라운 일이다. 실제로 책을 보면 내용이 페이지의 2/3 정도만 채워져 있고 하단은 여백이 충분히 제공되고 있다. 그리고 중간 중간마다 그림 하나와 중요 문장 하나씩 쌍을 이뤄 한 페이지를 통째로 잡아먹고 있다. 당연히 큰 글자와, 넓은 줄 간격은 기본이다. 다 읽는데 많은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책이 고급스러운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냥 작은 판본으로 만들어서 저렴하게 팔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어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모양새는 절약을 강조했던 풀러 선생도 좋아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1.위키피디어에서 "spaceship earth "를 검색해보면, 미국의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쓴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 1879)"에 이와 유사한 비유가 등장한다고 나와 있지만, 내가 볼 땐 "우주선 지구호"라는 비유가 헨리 조지의 영향을 받아서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소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두 사람이 주장한 내용에 유사한 측면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헨리 조지가 환경 문제를 염려했었을 리 만무하다는 점이다.
    2."구명정 윤리" 인류 전체가 공동 운명체라는 점을 더욱 극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우주선 지구호"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간혹 "구명정 윤리"가 강자들이 약자를 협박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이것은 풀러의 입장에서 보자면, "해적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풀러의 주장을 재난에서 구조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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