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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절주절 / 혼자 떠들기 2008/01/25 17:22

    리포트 베끼는 학생들 잡아내기

    #_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작년 여름에 나는 교양수업을 하나 맡게 되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이전부터 해오던 방식대로 보고서와 기말시험으로 평가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평가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학생 수가 매우 많다면 그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을뿐더러,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Copy & Paste 기법으로 복제된 보고서들을 일일이 잡아낼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만약 이 과정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라면 리포트는 아예 그만 두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남의 것을 자기 것인 양 한 학생들이 제대로 된 지적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런 방법으로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고, 이것은 결국 그들의 인생 어느 시점에서 더 큰 불행으로 되돌아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_2.

    그런데 갑자기 이런 학생들과 정면 승부를 한번 해보자는 의욕이 생겼다. 즉, 사악한 부정행위자들을 잡아내기 위한 함정을 하나 파는 계획을 세웠다. 우선, 리포트 주제로 낼 만한 여러 이슈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아직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것들을 골라내어, 일일이 인터넷을 검색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두어 가지 주제를 선정했다.

    그 중 하나는 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봐도, 한글로 된 관련 문서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주제였다. 오직 영문 자료로만 몇 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영문 자료의 핵심 내용을 한글로 번역해서 어느 게시판에 올려 두었다. 그래서 당분간 그 주제로 검색되는 한글 자료는 오직 내가 번역한 그 자료만 존재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주제는 한글로 된 참고 자료가 몇 개 있었다. 하지만 그 자료는 매우 개괄적인 것만 다루고 있어서 내용이 불충분했고, 또 다른 한글자료는 재미있게도 관련된 사람의 이름이 이상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래서 만약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그 자료를 그대로 복사해서 리포트를 작성하게 되면 내가 금방 알아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잘못된 한글표현이 나에겐 편리한 상황을 가져다 준 셈이다.

    plagiarism

    이렇게 해서, 나는 보고서를 웹에서 그대로 복사해서 제출하는 학생들을 잡아내기 위한 함정을 설치했다. 제대로 보고서를 작성한 학생이라면 그 자료들도 참고할 것이고, 올바른 형식으로 참고문헌도 제시되어 있을 것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자료를 복사해서 제출한 보고서는 매우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웹에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본 것은 아니므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자료를 이용한 학생들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이미 내 능력을 벗어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나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1]


    #_3.

    나는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고 자부했고, 득의양양한 상태로 아내에게 이 멋진(?) 계획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나에게 돌아온 것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그 계획은 "너무 사악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학생들 참 힘든데, 그런 식으로까지 해서 일부러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내가 학생들에게 미움 받는 강사가 되는 것이 못내 싫었나 보다. 아무튼, 나는 그 반응에 계획을 재고했다. 솔직히 이 계획은 내가 봐도 "사악한" 계획이었다. 몇몇의 질 나쁜 녀석들을 때려잡기 위해서 내가 지나치게 치졸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결국 이 계획은 포기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이전에 쓴 글이 있다.[보러가기 ]

    결국 나는 그 강의에서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았고, 그냥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로 성적을 내기로 했다. 그 수업은 잘 끝났고, 단 한 명의 학생도 성적으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적어도 난 학생들에게 미움 받는 강사는 면한 셈이다.


    #_4.

    어쩌다 보니, 다음 학기에도 강의를 하나 맡게 되었다. 아직 구체적인 강의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계속 고민 중에 있다. 이전에 폐기한 저 사악한(?) 계획을 다시 꺼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다. 아무튼 갈수록 "평가"라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아니, 원래 힘든 과정이었던 것을 이전에 대충해왔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리포트를 구매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지만, 사실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준비한 주제들을 다룬 리포트를 그곳에서 판매하고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설사 그런 주제도 다루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곳에서 판매된 리포트 중에서 수준 높은 자료는 거의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Happysloth
    2008/01/25 17:22 2008/01/25 17:22
    이 글과 관련된 글
    • 평가에서 리포트를 제외했다.... (10) [관련 태그 : 리포트/평가/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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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Trackback   10 Comments   Tags : Copy & Paste, Report, 리포트, 보고서, 평가, 표절,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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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기대됩니다. 한 번 해 보십시오 ㅜ_ㅜ

      이승환
      2008/01/25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이승환님 반갑습니다. 실제로 저 계획을 실행한다면 흥미진진할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글에서도 밝혔듯이, 실제로 실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감당해야 할 심리적 부담감이 생각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만약 수강생이 적당하다면 제가 일일이 보고서 작성과정을 점검해가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겠지만, 반대라면 사실상 리포트는 아예 포기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습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Happysloth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01/26 09:25
    2. 제가 블로그 유입경로를 보니까 이 블로그가 있더라구요. 제가 애쓰게 쓴 레포트를 제 블로그에 올려놓고 판매하고 있지요. 몇개밖에 되진 않지만... 어떻게 이 글하고 연결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레포트는 직접 써야됩니다. 그래야 공부가 되지요. 레포틑 베끼는것. 이거 밝혀내려면 많이 힘드실텐데... 아무튼 성과가 제대로 나왔으면 좋겠군요.

      nickie
      2008/01/30 1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nickie님 반갑습니다. 일단, 유입경로에 대한 말씀부터 드려야겠네요. 제 블로그 사이드바 메뉴에 올블로그 인기글을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nickie님의 글이 올블로그 인기글로 올라가서 이곳에 나타나게 되었고, 그래서 제가 nickie님의 블로그에 방문하게 되었을 겁니다.

        보고서 베끼는 것 잡아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조금만 신경써서 표절하면 사실상 잡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수업에서 글쓰는 것을 완전히 없애버리자니, 무언가 잘못된 것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계속 고민 중이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Happysloth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01/30 14:15
    3. 그렇군요. 아무튼 베끼는 레포트를 잘 잡아내시길 바랍니다. 근데 happysloth님 밑에 댓글보면 이렇게 말풍선이 나오는데, 이거 이글루스만 되는겁니까? 티스토리는 안되는 건가요? 티스토리도 되는거라면 어떻게 하는건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nickie
      2008/01/31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제 블로그는 Textcube이고, 말풍선 모양은 제가 사용하는 스킨에서 제공해주는 겁니다. 이 블로그의 스킨은 <http://skin.nzene.com>에서 얻으실 수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스킨 제작자께서 더 이상 관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원래는 Tattertools용으로 만들어진 스킨인데, 제가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Textcube에 맞게 쓰고 있습니다.

        티스토리는 제가 써보지 않아서 이 스킨을 제공해주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Happysloth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01/31 22:27
    4. 이 글의 제목을 보고 나서 생각나는건데, 리포트와는 좀 다른내용인데, 취업을 하기위해 자기소개를 작성하는데,. 특정 A라는 분야입니다... 인터넷에 A라는 분야의 자기소개서라고 치니깐, 그 관련한 자기소개서가 딱 하고나오더군요~!

      그 얘기를 듣고나니, 참..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의가 없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가 첫인상의 절반이니깐 그럴수도 있겠다 싶지만, 좀 그렇더라고요~!

      재아
      2008/02/01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재아님 반갑습니다. 자기소개서까지 그 지경이라는 점은 참으로 통탄스럽군요.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 글일진데, 남의 글로 자기를 소개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를 부정하는 셈이로군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이렇게 '올바르지 못한 것'에 너그러운 세상이 되었는지 참으로 씁쓸합니다.

        Happysloth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02/01 22:57
    5. 개혁이 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셨군요. :)
      저도 예전에 약간 비슷한 경험을 한지라 남일 같지 않네요.

      foog
      2008/02/14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foog님 반갑습니다. foog님의 좋은 글, 감사히 보고 있습니다. 이 방법은 영원히 사용하지 않을 겁니다. 대신, 리포트를 단계별로 여러 번 제출받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은 강사의 부담이 매우 커지지요. 학생들을 일일이 개인지도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다음 학기에 제가 맡을 과목이 폐강될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이야 일상다반사라서 별 문제는 아니지만, 만약 개설이 된다면 수강생이 매우 적을 것이 분명하니, 진지하게 위 방법을 고민중에 있습니다. 물론 폐강되면 어쩔 수 없겠지요.

        Happysloth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8/04/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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