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의 말실수
얼마 전, 오랜 친구가 전화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서로 많이 바빠서 자주 연락도 못 하고 살았었는데 그래도 가끔 그 친구가 나에게 연락을 하곤 했고,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그 친구가 먼저 연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곤 하지만,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다. 아무튼, 그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그 친구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친구 : 그런데 네 둘째 돌잔치를 했던가?
나 : 둘째는 없는데, 우리 민선이 하나야.
친구 : 그런가? 헷갈린다. 미안해!
그 친구는 잠시 우리 가족 구성원에 대해 착각을 했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실수도 아니다. 이 맘 때의 나이가 되니, 여기저기 결혼식과 돌잔치를 정신없이 찾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정확한 기억을 바라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나도 헛갈리는 때가 잦은데, 하물며 그 친구라고 해서 예외일 리가 없다. 또 실제로 내 주변의 몇몇 지인들이 둘째 아이를 얻는 일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요새 문득 아이가 하나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2. 교수님과의 대화
몇 달 전, 교수님과 저녁 늦게까지 술자리가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교수님이 유학을 갔을 때 이야기가 나왔다. 교수님은 유학가기 직전 결혼했고, 유학가서 오래지 않아 첫째 아이를 얻었다. 하지만 힘든 유학생활에서 아이까지 키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다행히도 지금의 자리를 얻었다.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자리를 얻게 되니, 아이가 더 있었으면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문제는 첫째와의 터울이 10년이 넘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둘째 아이가 말이 둘째지 사실상 혼자 크는 아이와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님은 아이를 하나 더 낳기로 했고, 결론적으로 모두 세 명의 자식을 두게 되었다. 결국은 늦둥이 아빠가 된 것이다. 사실 내 주변에 이런 늦둥이 아빠는 여럿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너도 나처럼 될" 것이라고 나에 대한 말씀도 빼놓지 않으셨다.
#3. 공부를 선택한 것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중요한 선택을 하나 했다. 그것은 그동안 내가 했던 것을 버리고, 지금 내가 공부하는 사회학을 선택한 것이다.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매일매일 출퇴근하는 회사원들이다. 이제는 경험과 경력도 많이 쌓여서 매우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계속 학교에 다닌다. 학생은 아니지만,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내가 원하면 안나와도 된다. 당연히 월급 같은 것은 없다. 그렇다 보니, 내가 약간의 돈벌이를 하는 것은 사실상 일용직에 가까운 것이다. 얼마 전 대학에서 계절학기 강의를 하나 했었지만 그것은 두 달짜리 일이었고, 지금 하는 또 다른 강의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간혹 보잘것없는 글을 팔아 용돈 벌이를 하고 있을 뿐이다.
몇몇 친구들은 이제 번듯한 자기 집을 마련하고, 자기 분야에서 더 높은 수준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안정된 기반은 그 사람의 능력을 배가시켜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단기간에 달성해야 할 목표는 있지만, 그것을 이루었다고 해서 내 삶의 특별하게 윤택해진다는 보장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다. 사실 나는 처음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는 선택을 했을 때, 속으로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남들보다 조금 가난하게 살자는 것이다. 어차피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내가 혼자일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 혼자가 약간 가난하게 사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내 아내와 우리 가족의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 가난한 아빠는 이 시대에서 죄악이다. 그러니 둘째 아이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4. 나도 아이가 많았으면 좋겠다.
현실적으로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어진다. 나는 아침에 민선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연구실로 나간다. 저녁이 되면 놀이방에서 민선이를 데려오고 조금 놀아주고 목욕시켜야 한다. 그러니 당연히 공부할 시간을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시간이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는 주말에는 연구실에 가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공부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하나면 확실히 허전하다. 엄마 아빠가 바빠서 가끔 혼자 노는 민선이를 보면, 그냥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다. 확실히 아이는 하나보다 여럿이 더 낫다. 만약 내가 대학 졸업하고 다른 친구들처럼 기업에 취직했더라면 지금쯤 둘째 아이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괜히 그런 친구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럴 때 내가 공부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미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도 아이가 여럿이었으면 좋겠고, 우리 민선이에게도 동생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은 민선이 하나 키우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어쩌겠는가? 이 모든 것이 무능한 아빠 때문인 것을. 이럴 때는 정말로 공부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 슬퍼진다.
이 글과 같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