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데렉 복, 2005, 파우스트의 거래: 시장만능시대의 대학가치, 김홍덕, 박재흠, 윤주영, 홍정환 역,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Derek Bok, 2003, Universities in the marketplace: the commercialization of higher education, Princeton, N.J. : Princeton University Press. |
길거리를 걷다 보면 대학광고가 최근 눈에 자주 띤다. 과거에는 대학이 광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텔레비전에서도 대학광고를 만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그것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더 많은 학생을 모집해야 하고, 더 많은 시설을 투자해야 하고, 더 많은 연구비를 써야 하는 시대다. 따라서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돈을 충당하고자 대학은 자기 자신을 팔기 시작했다.
이 책은 미국 대학의 상업화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지적하는 책이다. 대체적인 결론은 많은 사람이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상식적인 것들이다. 지나친 상업화가 대학의 가치를 떨어뜨린다는 그런 주장들. 하지만 상업화, 더욱 정확히 대학에 기업적 가치를 도입하는 것이 갖는 긍정적인 면도 아주 간단하게나마 지적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그 상업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시하였다. 대학이 상업화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것들의 복합적인 작용의 결과물임이 분명하지만, 그중에서도 저자는 "대학의 근본적인 무한 경쟁"을 꼽고 있다. 미국의 대학들은 최고 수준의 순위를 유지하고자 스타 과학자와 교수를 스카웃하고, 더 많은 장학금으로 유능한 학생들을 모집하고, 값비싼 최고의 실험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이런 무한 경쟁으로 말미암아 대학의 상업화가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일면 타당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구대학(Research University)"에만 적용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대학 스포츠와 관련된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대학 스포츠팀이 대단한 돈벌이 수단이 아니어서 스포츠와 관련해서는 그다지 언급할 필요를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상업화의 문제점에 대해 내가 이전부터 심히 공감하던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대학은 최고가 되기 위해 우수한 연구성과가 필요하다. 따라서 교수들은 연구성과에 대한 압력을 받고, 그에 따라 정부와 기업의 도움으로 많은 연구를 수행한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가장 큰 손해를 입는 것은 바로 학생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학에 낸 등록금에 걸맞은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현실은 교수가 잘 보이지도 않는 대형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교수가 바빠서 조교가 진행하는 수업을 듣게 된다. 대학의 무한경쟁이 낳은 피해 중 하나이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대학의 상업화가 장기적으로 대학에 이익을 가져오지 않을 수 있다. 학교 건물에 기업이름을 붙여주고 돈을 받는 것은 일반화된 일이지만, 이런 것들은 결국 "가격만 맞으면 신성불가침의 장소는 없다.(p.186)"는 점을 인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결국 "파우스트의 거래"로 귀결될 수 있다. 그것은 결국 대학이 갖는 가장 신성한 영역을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다음의 인용문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보다 중요한 점은 상업화가 객관적이고 공정한 강의 및 연구에 관한 대학의 명성을 손상시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의과대학이 제약회사에 의한 임상시험 결과의 조작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때, 교수들이 이해관계가 있는 기업과 자신과의 연관성을 밝히지 않은 채 논란이 되는 주제에 관한 저술을 계속할 때, 학장이 강의 교재에 광고를 실을 수 있도록 허용할 때, 대중은 대학 및 대학교수들의 자율성과 공정성에 의심하게 될지 모른다.(p.133)
사실 현재 우리나라의 대다수 대학은 돈이 부족하다. 대학이름이 붙은 티셔츠와 머그컵을 아무리 팔아도 그 부족함을 메우기 어렵다. 하지만 그 전에 대학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가 학생들의 등록금에 합당한 것인지부터 되새겨봐야 한다. 교수의 자율성을 특권으로 생각하는 무능한 교수들이 즐비한 대학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제 할 일을 다하지 못한다. 교수들이 바뀌지 않으면 대학은 바뀌지 않는다. 미국의 대학이 지나친 상업화의 문제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조심해야 한다는 주장은 올바르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이 직면한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문제는 상업화가 아니라는 것에 핵심이 있다. 지나친 상업화가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자본에 대한 종속을 심화시킨다는 우려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우리나라 대학이 갖는 핵심문제는 바로 "무능"이다.
자본은 철저하게 자기 돈벌이를 찾아서 움직인다. 세계적인 대기업들이 엄청난 자본으로 대학을 유혹하는 것은 그 대학들이 자신들에게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대학은 당분간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된다. 그런 능력이 없으니 자본이 유혹할 리 만무하다. 즉, 파우스트가 거래를 거부하는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다소 이상한 방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학입시 전형료로서, 학생들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상업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얼마큼 상업화할 것인가와 거기서 얻은 이익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학교의 기념품을 만들어 파는 것 정도야 그렇게 큰 문제가 안 될 것이지만, 대학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문제이다.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과 장비에 대한 특허로 독점적인 이익을 얻는 것과 대학의 공익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도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요지는 대학의 상업화를 피할 방법은 없으니,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집중되어야 한다.
결국 오늘도 책 이야기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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