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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 대중문화 / 예술 2006/07/16 22:51

    이성복의 "그날"이라는 시를 읽었다.


                            그날


                            그날 아버지는 일곱 시 기차를 타고 금촌으로 떠났고
                            여동생은 아홉 시에 학교로 갔다 그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前方은 무사했고 세상은 완벽했다 없는 것이
                            없었다 그날 驛前에는 대낮부터 창녀들이 서성거렸고
                            몇 년 후에 창녀가 될 애들은 집일을 도우거나 어린
                            동생을 돌보았다. 그날 아버지는 未收金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여동생은 愛人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그날 퇴근길에 나는 부츠 신은 멋진 여자를 보았고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면 죽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占 치는 노인과 便桶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市內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성복                                        
                                                                                       

    며칠 전, Allblog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이 시를 읽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최근 몇 년간 시라는 것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한때는 열심히는 아니었어도 간혹 서점에서 시집 한 권 사서 읽곤 했었는데, 이 시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기억조차도 이미 까마득해졌나 보다.

    아무 생각없이 우연히 마주친 시 하나, 나는 저 시를 3번 연속 천천히 음미하면서 다시 읽었고 하루종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마지막 구절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흔히 말하듯, 뒤통수를 한대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이 시는 나에게 적잖은 감성적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지 잘 모르는 이성복이라는 시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이성복의 "그날"이라는 시는 마치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시를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엄청난 블로그와 카페, 그리고 지식인까지 이 시에 대한 내용이 산더미처럼 있었던 것이다. 이 시를 감상하고 느낀 바가 있는 대한민국 국민이 저렇게 많았단 말이던가? 그걸 왜 나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이내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이 시는 수능을 대비하는 학생들이 공부하는 현대시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는 학교에서 만나지 못한 시였지만 최근에 이런 방면을 주목을 받고 있는 듯 하였다. 그러면 그렇지...... 

    모두 시를 읽고 있는데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


    PS.> 이 시는 70년대 말에 쓰였다. 그래서 "그날"이라고 했을 때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518은 이 시와 관련이 없다. 이 시를 어떻게 해석하건 그건 독자의 자유이지만, 솔직히 이 시가 518과 관련이 있었다면 그 시의 느낌은 반감했을 것이다.
    Happysloth
    2006/07/16 22:51 2006/07/16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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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Trackback   2 Comments   Tags : 그날, 시,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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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모두 시를 읽고 있는데 아무도 느끼지 못했다."
      고3 학생으로서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덧 1 : 고등학교 1학년 때 야자 시간에 다음날 배울 것을 예습하던 중, 교과서에서 정비석이라는 사람이 쓴 '산정무한'이라는 금강산 기행문을 읽고 감동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수업 시간에 '산정무한'을 읽고, 선생님이 불러 주시는 이 글의 내용상의 특징이나 풀이를 적을 때는 그런 감동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산정무한'이 모의고사 지문으로 나왔을 때에도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덧 2 : 얼마 전에 우연히 2~3년 전에 썼던 일기를 보고 문득 '내가 지금 교재에서 읽고 있는 시를 나이가 든 뒤에 읽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하는 생각이 나더군요. 그래서 요새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문제지 지문에 나오는 시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따로 골라서 텍스트 파일로 입력해서 저장해두고 있습니다.

      Kunggom
      2006/08/07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Kunggom님 반갑습니다.

        고3 학생이시면 참 힘든 시기로군요. 문학의 아름다움을 음미해볼 기회조차 없이, 주입식 교육의 폐해로 인해 오히려 많은 학생들이 문학을 더 꺼려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지요.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암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죠. 지금이야 그렇다고해도, 나중에 정말로 진지하게 문학과 예술에 대해 음미하는 여유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Happysloth
         댓글주소  수정/삭제 2007/01/19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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