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manuel Derman, 2004, My Life as a Quant: Reflections on Physics and Finance, John Wiley & Sons, Inc.
"물리와 금융에 대한 회고"라는 제목은 주목을 끌기에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도 주저함 없이 돈을 지불하고 이 책을 구입했다. 오랫동안 책장에 처박아 두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은 참 다행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기대했던 만큼 매력적인 책은 아니었다. "물리와 금융"의 만남이라는 매력적인 유혹이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게 방해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읽기 전에 "회고"라는 말에 주목을 했어야 했다. 그렇다. 이 책은 회고록이다. 물리학자가 어떻게 금융이라는 분야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이 책의 주요한 목적 중에 하나임에 분명하지만, 그 이전에 이 책은 이매뉴얼 더만(Emaunel Derman)이라는 성공한 '퀀트(Quant)'가 자신의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는 내용이 주로 기술되어 있다. 내가 정말로 관심이 있었던 내용인, 물리학을 전공한 학자가 파생금융 상품의 미래 가치를 결정하는 모델을 만드는 방법과 관련된 내용은 200페이지가 훨씬 더 지난 다음에야 등장한다. 그 이전까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로만 채워진 것처럼 보이는 컬럼비아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어떻게 자신이 살아남아 학위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이후 어떻게 이곳저곳에서 간신히(?) 연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눈물겨운 이야기뿐이다. 진짜 이야기는 그가 물리학을 때려치운 그 다음부터다.
퀀트?

그가 주로 하던 일은 블랙-숄스(Black-Scholes) 모델[#1]이라 불리는 옵션 가격결정 모델을 보다 더 복잡한 실제 환경에서도 잘 맞도록 계량해서, 실제 거래 현장에서 쉽게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문제의 핵심을 포착하는 통찰력이 필수적이고, 이렇게 얻어진 통찰을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정밀한 수학적 모델로 만들고, 궁극적으로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거래 현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퀀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이 책의 저자인 더만은 자신의 이름을 딴 모델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정도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충분한 성공이다.
학문의 효용
과거와 달리, 지금 물리학이나 수학과 같은 순수학문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이 분야에서는 최고가 아니면 성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저 분야에서의 성공이라는 것이 사실 물질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물리학과 수학 같은 학문은 도무지 돈벌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런 순수학문이 돈벌이의 최첨단인 금융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을 것이고, 순수학문이라는 것이 단지 하느님과의 숨바꼭질 놀음이 전부가 아니라 실제로는 엄청난 부를 축적하는데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존재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물리학과 수학 같은 순수학문의 "새로운 효용"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연구와 현장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연구의욕을 강조하고 있다. 퀀트라는 직업이 대단히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금융분야에서 실제 주도권은 직접적으로 돈을 취급하는 영업부문에 있었고, 퀀트들은 단지 그들을 도와주는 연구원에 불과했다. 그래서 연봉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고, 구조조정 때마다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고위층에 설득해야만 했던 사람들이다. 실제로 기여한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동료 퀀트들이 영업 분야로 진로를 바꾸고 싶어할 때, 그는 계속 연구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결국 골드만삭스에서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저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래의 위험을 더 정확하게 계량하고자 노력했던 그들이 정작 자신들이 기여한 성과를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불평할 수는 있지만, 이런 관점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연구자의 일과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R&D에서 Research를 하는 것과 Development를 하는 것 사이의 넘어설 수 없는 벽과 유사하다. 이것에 대한 최악의 결과가 바로 롱텀캐피털(Long-Term Capital Management, LTCM)의 비극이다.
천재들의 실패[#2]
LTCM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를 포함한 천재적인 경제학자들이 참여한 투자회사로 그들이 만든 엄밀한 수학적 모델에 입각한 투자전략으로 큰 수익을 얻었지만,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와 1998년 러시아의 경제위기 국면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천문학적인 손실을 남기고 문닫은 비극의 주인공이다. 이 책에서는 이 사례가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다. 아마 저자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LTCM은 역사상 최고의 퀀트들이 참여하여 가장 첨단의 금융기법으로 투자한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끔찍했다.
연구자들이 세운 엄밀한 수학적 모델이라는 것은 사실 몇 가지 합리적인 가정을 통해 수립되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첫째, 사소하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 요인들은 무시된다는 것이며, 둘째 초기에 도입한 가정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면 그 모델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연구실에서 만들어진 모델과 실제 현실이 언제나 정합적으로 맞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19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처럼 이론적 모델로서는 거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수학적 모델이라는 것은 거의 무용지물이다. 이때는 오랜 경험을 가진 노련한 투자자의 감각이 오히려 더 정확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도 책 속에서 실제 거래상황에서 발생하는 퀀트와 거래사 사이의 긴장을 묘사하려고 노력했다.
사실 이런 문제는 금융이 아닌 분야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정책분야에서 오랜 연구를 한 교수들이 직접 그런 정책을 담당하는 행정을 맡게 되었을 때, 자신이 이전에 주장했던 것과 다른 정책을 도입하거나, 적절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좋은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확실한 것은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모델'은 무얼 하는 것인가?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또 한참을 이야기해야 하니,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편이 나을 듯 하다.
학자와 노름꾼
이 책에서 내가 가장 거슬렸던 점에 하나는 골드만삭스라는 회사에 대한 태도였다. 저자는 골드만삭스가 교양 있는 문화를 가진 괜찮은 기업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지만, 내 눈에는 골드만삭스나 시장바닥에서 일수 돈놀이 하는 아줌마나 비슷하게 보인다. 그들의 차이라고는 규모일 뿐이다. 다른 파생금융상품도 마찬가지지만, 저자가 주로 다루고 있는 옵션이라는 금융상품은 '통 큰 내기'와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1년 후에 특정 회사의 주가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이나, 내년 시즌에 특정 야구팀이 우승하는 것을 예측하는 것이나 근본적으로 동질의 작업이다. 다만 금융공학은 걸린 판돈이 워낙 크기 때문에, 그 확률과 위험을 예측하는 데에 엄청난 돈을 투자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몸값 비싼 고급 인재들을 데려와 확률계산 작업을 시키는 것일 뿐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얻어진 자신의 동물적인 감각을 신뢰하는 도박사나 복잡한 수학 모델을 동원한 도박사나 그들이 "돈 놓고 돈 먹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은 매우 고급스런 도박꾼이라는 사실이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도 자신이 "연구"에 많은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고, 회사가 돈 버는 데에 자신이 공헌했다는 점뿐만 아니라, 학계에도 나름대로 공헌한 바가 적지 않음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금융에 대한 이론적 사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는 금융공학에 대한 이론적 입장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일반이론은 없다." 즉, 그때그때마다 적합한 모델을 설계할 수 있을 뿐이지, 모든 것을 예측해주는 모델은 없다는 뜻이다.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처럼 모든 것을 아우르는 금융이론을 설계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실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음을 저자는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만약 정말로 그런 이론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을 발견한 사람은 지구상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언급되지는 않지만,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퀀트의 노력으로 미래의 위험을 확률적으로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되면서 더 복잡하고 다양한 파생금융상품들이 등장하고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것이 또한 시장의 불확실성의 증가에 기여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이 경험하고 있는 서브프라임 문제에서 가장 두려운 점은 이것이 너무나 복잡해서 손실액이 얼마인지를 정확히 산출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손해를 입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손해가 얼마인지를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두려운 것이다. 일이 이렇게 복잡하게 된 데에는 급속도로 발달한 파생금융상품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얽혀서 그 전체를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퀀트들이 만든 모델 덕분에 부동산, 채권, 선물, 옵션, 주식, 스왑 등의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연결된 파생금융상품들을 손쉽게 대량으로 제조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시장은 급속도로 확장되었지만, 오히려 이런 엄밀한 계산 가능성이 역설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변동의 발생에 기여한 셈이다. 이것은 마치 불확정성의 원리와 카오스 현상을 섞어놓은 듯한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책에 대한 평가
매우 흥미로운 소재를 다루고 있는 책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인상적인 책은 아니다. 400쪽이 넘는 분량치고는 얻을 수 있는 내용도 많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은 회고록이다. 퀀트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알고 싶은 독자라면 앞의 200쪽은 그냥 무시해도 상관없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승산이라는 출판사다. 생소한 출판사이기는 하지만, 내 책장에는 이 출판사의 책이 몇 개 더 꽂혀 있다. 수학과 관련된 책을 많이 출판하는 독특한 출판사이다. 나름대로의 틈새전략이라고 볼 수 있지만, 수학이 일반 대중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출판사의 전략이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좋은 책들이 더욱 많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 이 책에 등장하는 재밌는 문제 하나를 소개하고 이만 여기서 끝내야겠다.
PS. 이 책의 181쪽에는 재미있는 문제가 하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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