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는 대중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대학교수이다. 그는 학술적인 연구 이외에도 과학과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대중에게 쉽게 알려주는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고, 이 책 역시 그런 노력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저자가 여러 대중 매체에 기고했던 이전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래서 내용이 쉽고, 아무 때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과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이 책을 읽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욱 이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이런 대중적인 책은 그냥 간단히 살펴보고 방구석에 처박아두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책에는 몇 가지 관심을 끄는 것이 있어서 간략하게 정리해두고자 한다.
책의 구성
이 책은 크게 4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첫째는 과학에 대한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과학에서 창의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 번째는 시민을 위한 과학기술 혹은 과학기술의 민주화와 관련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는 부분이고, 마지막으로 과학과 문화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면서 책을 마치고 있다. 이 중에서 첫 번째 것과 네 번째 것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 세 번째 부분은 다른 부분에 비해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읽어볼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정책결정은 대부분 과학 지식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보통 여러 집단과 개인들 사이에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마련이고, 대중적으로 큰 논쟁거리가 되곤 한다. 게다가 이런 문제들은 보통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 이런 사안을 접할 때마다, 과학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일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며, 문제 인식과 해결의 출발점으로 이 책은 대중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잡종과 창의성
저자는 이전부터 창의성이라는 것은 이질적인 것들의 만남 즉, 잡종(hybrid)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최근 유행하는 통섭(consilience) 이론이나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책에서는 아인슈타인이나 슈뢰딩거 같은 과학자들의 사례를 들고 있다. 과거에는 없었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하는 것을 창의성이라고 한다면 저자의 주장은 참으로 올바른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잡종은 현실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우리 사회에서 장려되지도 않는다. 사실, 우리 사회는 창의성이라는 단어만 좋아할 뿐, 진정으로 창의적인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회라는 점이 결정적인 문제다.
과학기술의 중립성과 윤리의 문제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과학에 대해서 다양한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을 독자로 삼는 책이다. 배경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고, 오히려 다 아는 이야기라서 독서를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매우 유용한 표현들이 담겨 있다. 특히, 과학기술의 중립성과 과학기술자의 윤리 문제와 같이 매우 논쟁적이고 첨예한 문제에 대해 쉬운 용어로 과학기술학자의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접근하기 어렵고 그 내용이 미묘한 문제를 쉬운 용어로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내공이 높은 "고수"라는 점을 보여준다. 책에서 저자가 하는 말은 다음과 같다(pp.218~220).
-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근본적으로 가치중립적인 것이다. 이는 좋은 방향으로도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결국,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렸는데, 이는 과학기술자의 몫이 아니라 정치인과 시민 사회의 몫이다.
- 기술에 대해서는 윤리나 가치와 같은 얘기를 할 수 있지만, 과학에 대해서 윤리를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과학 연구는 자연의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고, 이는 가치중립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현 단계에서 분명하지도 않은 미래의 윤리 문제를 걱정한다면, 현재 연구가 낳을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950년대 DNA구조가 이중나선이라는 것을 밝혀냈을 때, 인간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가져올 잠재적 문제를 너무 걱정한 나머지 연구를 중단하도록 했다면 지금과 같은 바이오 혁명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설령, 과학기술이 일으키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러한 문제는 과학기술자들이 아니라 생명윤리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이 다루고 논의해야 할 주제이다. 과학기술자들이 윤리 문제에 개입하면, 오히려 "과학기술 연구는 결국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주장만 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위에 제시된 관점이 일면 타당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올바른 관점도 아니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과학기술은 그 자체에 특정한 발전 방향의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과학기술은 양날의 칼인 경우가 있지만, 다른 과학기술은 좋게 사용될 가능성보다 나빠질 가능성이 훨씬 크다. 예를 들어, 과도는 과일을 깎을 때에도 쓸 수 있고 사람을 위협할 때에서 쓸 수 있다. 그렇지만, 일본도는 사람을 해치는 것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아주 불편하게 만들어진 칼이다.
-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의 뚜렷한 경계를 설정하는 일은 현실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나 쉽지 않다. 과학은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면 기술 발전은 과학의 발전을 낳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대 과학은 자연에 존재하는 법칙을 발견하기 위해서 실험실에서 특수한 인공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과학은 발견하는 만큼이나 구성하는 것이다.
- 과학기술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우리가 20세기 과학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과학 연구의 경우 그것이 한참 진행된 다음에는 그 방향을 돌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조금이라도 위험하고 생각되는 연구는 다 막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연구가 눈덩이처럼 커져서 엄청난 모멘텀(momentum)을 가지기 전에 그 초기 단계에서 가능한 미래의 위험이나 부작용을 자세히 고찰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 생명윤리학자들처럼 과학과 윤리의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지만, 이들의 연구가 영향력을 가지려면 실제 연구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지금의 연구가 계속 진행되었을 미래에 그 연구가 인간 사회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고, 여기에는 또 많은 전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에 대한 저자의 응답이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이 구성된다"는 표현만 제외하면, 쉬운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고 있다. 실제로, 인문학자나 사회학자들은 매우 어려운 전문용어를 남발하는 경향이 많다. 일부러 어렵게 썼다기보다는 자신에게는 일상적인 표현이라서 그렇게 했겠지만, 일반 대중이나 타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최대한 쉬운 말로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진짜 "고수"들은 이런 작업을 잘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위에 인용한 저자의 대답은 참으로 많은 도움을 준다.
홍성욱 교수는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저서들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이런 작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이 볼 때, 높은 수준의 지식을 갖춘 학자들이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평이한 책을 쓰는 것이 쉬운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학술적 연구와 대중적 글쓰기 모두를 잘하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홍성욱 교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잘하는 흔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홍성욱 교수의 저작은 그 내용도 훌륭하지만, 내가 강의할 때 여러 가지로 많은 도움이 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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